작품평 및 작가노트

2006년 8회 작품전을 준비하며…(동정무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5-12-04 09:34

본문

2006년 작품전을 준비하며…


“문인화는 송대 성리학적宋代 性理學的 사상체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말은 지난 2000년 계명대학교 철학과 석사논문에서 나름대로 규정했던 문인화의 기본 개념이다. 이 말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문인화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철학사상에 기초한 예술장르이다. 그렇다면 성리학적 세계관이 몰락한 지금 문인화의 예술적 가치와 효용 또한 무의미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아기가 어미의 뱃속에서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성장하지만, 어미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독립적 주체가 되는 것처럼 문인화 역시 성리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성리학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현할 수 있는 주체적 영역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문인화가 성리학이라는 모태를 벗고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예술성을 지닌 장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번 전시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인화의 전통적인 화법을 통하여 21세기 새로운 문인화가 나아갈 방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물이다. 문인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해서 이것이 결코 전통을 부정하거나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의 합리적 계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대적 환경이나 문화양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문인화는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 긴장보다는 여유를, 세련된 것보다는 어눌함을, 화려함보다는 고졸함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해체되었다고 해서 수양을 본질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방법이나 형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문인화는 문인사대부의 정신을 현대에 맞게 재조명하고 그것을 예술적 형태로 표현해 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의도에서 이번 그림의 화제는 전통적 방식인 한문을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을 선택하였다. 다만 화제의 내용은 성리학의 학문적 내용인 윤리도덕에 관한 격언을 주로 선택하였다. 이는 문인화의 핵심 정신이 성리학적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논리에 의해 윤리적 가치가 무너져가는 현대 사회를 생각하면서 감상자가 화제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는 전통적인 표현기법을 따르고 있으나 부분적으로는 현대에 맞는 표현기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바탕 화지는 일반적인 화선지를 사용하였으나 바탕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무늬와 색깔을 첨가하여 감상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구도에 있어서는 실재적인 사실에 근거한 복잡한 설명을 피하고 주제에 맞게 대상의 정수만 취하고자 하였다. 그림의 내면적 정신성에 있어서는 성리학적 우주 생성론의 체계를 주제로 하여 이를 현대의 생명의식과 결합하였다. 즉 ‘태극太極’을 ‘생명生命’과 연결하고, ‘생명’은 다시 ‘동動’과 ‘정靜’으로 나누어 보았다. 여기에서 동動은 ‘양陽’, 혹은 ‘빠름’의 성질에 비유하였으며, 정靜은 ‘음陰’, 혹은 ‘느림’의 성질에 비유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번 개인전은 바탕처리에서부터 구도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이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즉 바탕색은 흰 화선지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황토를 사용하여 감상자들에게 보다 친근감을 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동動에 해당하는 작품은 온화하고 밝게 처리하여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정靜에 해당하는 작품은 무겁고 어둡게 처리하여 적막한 느낌을 주었다. 운필에 있어서는 양陽 혹은 동動의 성질에 해당하는 빠른 운필법과 음陰 혹은 정靜의 성질에 해당하는 느린 운필법을 나누어 따로 표현하였으며, 때로는 동정動靜을 동시에 표현하여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화목畵目의 종류는 생태학적 특징이 君子의 인품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사군자를 중심으로 하였으나, 주제에 따라 연이나 포도, 조롱박, 소나무 등인 요소들을 나누어 서로 대비해서 표현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색은 담채를 사용하였으나 문인화의 전통적인 먹색을 중심으로 하였다. 

이것은 모두 ‘생명’의 본질이 문인화를 통하여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이런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으나 어는 정도 작품 제작 의도를 감안하여 그림을 감상한다면 좀 더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2006. 5.

현동玄同 사공홍주司空弘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